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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비가 오기 직전의 공기는 이상하게도 금속 냄새가 났다.
오래된 전철역 3번 출구 앞, 사람들의 발이 가장 빨리 지나가는 모퉁이에 작은 시계수리점이 하나 있었다.
간판에는 바랜 파란 글씨로 정호시계병원이라고 적혀 있었고, 유리문에는 누군가 오래전에 붙였다가 반쯤 떨어진 스티커가 아직 버티고 있었다.
“기억도 고쳐드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다.
기억을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하지만 그 문장 때문에 다시 고개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았다.
서린은 그 문장을 싫어했다.
너무 감상적이고, 아버지답지 않았다.
아버지 정호는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도 크게 웃지 않았고, 화를 낼 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어머니가 대신 웃고, 대신 화내고, 대신 울었다.
그러니까 집안의 소리는 대부분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어머니가 떠난 뒤, 집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싫어서 서린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집을 나왔다.
전화도 뜸했고, 명절에도 근무를 핑계로 늦게 갔다.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였고, 죽음과 가까운 병동에서 오래 버티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서 생긴 상실 앞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앉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문은 왜 이렇게 끝까지 안 닫아요? 냉난방 다 빠져나가잖아요.”
오랜만에 들른 어느 토요일, 서린이 유리문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정호는 돋보기를 이마 위로 올린 채 작은 드라이버를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분해된 손목시계가 꽃처럼 펼쳐져 있었다.
“손님 들어오는 소리 들으려고.”
“종 달면 되잖아요.”
정호는 잠깐 서린을 보더니,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은색 종 하나를 꺼냈다.
이미 달려 있었다.
다만 너무 오래돼서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정호는 그 종을 손끝으로 가볍게 튕겼다. 맑은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종은 마른 목처럼 작게 떨리기만 했다.
“얘도 고쳐야지.”
그때 서린은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어머니 장례식 날에도 울지 않던 아버지가 종소리 하나에 ‘고쳐야지’라고 말하는 게, 마치 중요한 걸 일부러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과일 한 봉지를 꺼내 냉장고에 넣어 두고 금세 가게를 나왔다.
나가면서도 유리문에 붙은 문장이 눈에 밟혔다.
기억도 고쳐드립니다. 거짓말 같았다.
고쳐지기는커녕, 사람을 더 아프게 만드는 게 기억이었다.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정호가 처음 쓰러졌다.
가게 단골인 김밥집 사장이 119를 불렀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정호의 폐 사진에는 흐린 그림자가 여러 장 겹쳐 있었다.
서린은 당직을 마치고 도착한 중환자실 앞에서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늦었다는 말은 의사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지만, 결국 가족에게는 정확히 들리는 말이었다.
치료를 해도 시간은 길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정호는 산소 줄을 낀 채로도 놀랍도록 차분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서린의 목소리는 화를 내는 쪽에 가까웠다.
울면 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녀에게 지금이 그랬다.
정호는 한참 후에 대답했다.
“너 야간근무 많잖아.”
그 짧은 말이 서린의 분노를 더 키웠다.
야간근무가 많아서? 그래서 폐가 망가진 걸 숨겼다고? 그건 배려가 아니라 회피 같았다.
서린은 병실 의자를 소리 나게 당겨 앉았다가 곧 일어섰다.
더 있다가는 큰소리를 낼 것 같았다.
나가려는 그녀를 정호가 불렀다.
“서린아.”
서린이 돌아보지 않은 채 멈춰 섰다.
“가게 열쇠, 카운터 오른쪽 서랍에 있다.
혹시… 손님들이 찾으러 오면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그때도 서린은 아버지가 자기 병보다 가게를 더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답답해서 대답도 하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종이컵 커피를 뽑았지만 한 모금도 못 마셨다.
식어 가는 커피 위로 형광등 불빛이 떨렸다.
정호는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항암치료 일정이 잡혔고,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호는 다음 날부터 가게 문을 열었다.
서린은 결국 휴일마다 가게를 도우러 나왔다.
돕는다는 말보다는 감시한다는 쪽이 더 맞았을지도 몰랐다.
산소포화도, 약 먹는 시간, 식사량.
그녀는 환자에게 하듯 아버지를 살폈다.
정호는 대체로 순순히 따랐다. 다만 가게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 동안 서린은 이 가게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몰랐다.
시계만 고치는 곳이 아니었다.
탁상시계, 괘종시계, 손목시계는 물론이고, 오래된 타이머, 벽시계, 알람시계, 심지어는 요즘 보기 힘든 녹음 기능이 달린 복약 알람기계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정호는 어떤 물건은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시장 상인들의 낡은 타이머, 독거노인 복지관에서 가져온 알람시계, 치매안심센터 직원이 들고 오는 녹음 시계들.
“왜 이건 공짜예요?” 서린이 전표를 보며 물었다.
“그냥.”
“그냥이 어디 있어요. 부품값도 들 텐데.”
정호는 조용히 십자드라이버를 돌리다가 말했다.
“약 먹는 시간 놓치면 큰일 나는 분들 거야.”
그제야 서린은 가게 안쪽 선반에 같은 모양의 작은 기계들이 줄지어 놓인 걸 자세히 보았다.
버튼 위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침 약, 점심 식사, 혈압 체크, 외출 금지.
어떤 기계는 버튼을 누르자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저 민수예요. 약 먼저 드시고 밥 드세요.” “아버지, 문단속 꼭 하고 주무세요.”
아이 목소리, 중년 여자 목소리, 군대에 있는 아들의 목소리, 멀리 사는 딸의 목소리. 서린은 순간 말을 잃었다.
정호는 고장 난 스피커를 갈아 끼우며 덧붙였다.
“요즘은 다 휴대폰으로 하지만, 귀 밝지 않은 분들은 이게 더 편해.”
서린은 처음으로 유리문 문장이 조금 이해되는 듯했다.
기억을 고친다는 말은, 어쩌면 잊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비닐 앞치마를 두른 시장 반찬가게 주인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손에는 빨간 플라스틱 알람시계가 들려 있었다.
바닥에 몇 번 떨어뜨린 듯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사장님, 이거 좀 살려줘요. 제발. 소리가 안 나.”
정호가 시계를 받아 들고 익숙한 표정으로 뒤판을 열었다.
서린은 옆에서 고객 접수표를 작성했다.
이름은 한명자. 연락처를 적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오늘 안에 돼요? 내일 아침까지 꼭 돼야 돼요.”
“왜요?” 서린이 묻자, 아주머니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말했다.
“이거 우리 아들 목소리 들어 있는 건데… 이제 이것밖에 없어서.”
가게 안 공기가 순간 멈춘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급하게 말했나 싶었는지 시선을 내리깔았다.
“작년에 사고로 갔어요. 핸드폰도 고장 나고 데이터도 날아가고… 이것만 남았는데, 요즘 스피커가 지지직거리더니 아예 안 들려.”
정호는 아무 말 없이 시계를 귀에 대어 보고, 작은 배터리를 분리한 뒤 새 박스에서 부품들을 꺼냈다.
“오늘은 안 됩니다.” 정호가 천천히 말했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그때 정호가 덧붙였다. “대신 내일 새벽까지 해놓을게요. 아침 장사 전에 찾아가실 수 있게.”
“새벽까지요? 아이고, 그럴 것까지…”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가고 난 뒤, 서린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저가형 플라스틱 알람시계였다. 굳이 새벽까지 붙들고 있을 정도의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의 얼굴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단단했다.
마치 수술대 앞에 선 의사 같았다.
서린은 무심코 떠올렸다.
자신도 병원에서 가끔 그런 얼굴을 한다는 걸.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는 얼굴.
가게 문을 닫고 나서도 정호는 집에 가지 않았다.
서린이 저녁 도시락을 사 와도 그는 거의 손대지 않고 작업등 아래에 앉아 있었다.
기침이 길어질 때마다 서린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손끝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납땜인두 끝에서 미세한 연기가 올랐고, 작은 스피커 유닛이 교체되었다.
정호는 녹음 회로를 살펴보다가 오래된 접점을 하나씩 닦았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그는 새 배터리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잡음만 났다.
서린은 아, 결국 안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호가 볼륨 다이얼을 아주 미세하게 돌리자, 잡음 사이로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엄마, 다섯 시예요. 김치 냉장고 옆 반찬 꺼내서 밥 먹어요. 너무 늦게 먹지 말고… 그리고 오늘도 장사 잘돼요. 나 퇴근하고 갈게.”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가게 안에 있던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퇴근하고 갈게’라는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남겨 둔 가장 평범한 약속은, 다른 어떤 유언보다도 사람을 무너뜨린다.
서린은 눈을 깜빡였고, 정호는 재생을 멈춘 뒤 아주 조심스럽게 뒤판을 닫았다.
“아버지.”
“응.”
“이런 거… 많이 고쳐줬어요?”
정호는 대답 대신 선반 쪽을 턱짓했다.
서린이 돌아보니, 낡은 녹음 알람시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각 기계의 바닥에는 작은 종이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날짜와 이름, 그리고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재생버튼 접촉 불량 / 손자 목소리. 스피커 교체 / 부인 유언. 시간 오차 심함 / 남편 기일 알람. 서린은 목 안이 뜨거워졌다.
아버지는 이 작은 가게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씩 붙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자랑하지도 않고,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을, 매일.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반, 한명자 아주머니가 시계를 찾아갔다.
정호는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억지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놓으려 했지만 정호가 고개를 저었다.
대신 시계 재생 버튼을 한 번 눌러보라고 했다.
가게 안에 다시 그 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웃으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입술이 떨리더니 소리 없이 울었다.
울음을 참느라 어깨가 아주 작게 들썩였다.
서린은 카운터 아래 휴지를 꺼내 건네며 처음으로 손님과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주머니가 나간 뒤, 유리문에 달린 고장 난 종이 바람에 흔들렸다.
여전히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서린은 그 떨림이 전보다 크게 보였다.
며칠 후, 정호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를 받은 날이면 정호는 밥을 거의 못 먹었고, 하루 종일 기운이 빠졌다.
그러나 조금 나아지면 또 가게로 나갔다.
서린은 마침내 쉬는 날 일부를 아예 비워 가게에 상주하기 시작했다.
병원 동료들은 “너도 쉬어야지”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가게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녀를 덜 지치게 했다.
수리 접수, 부품 정리, 배터리 교체, 손님 응대.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서로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말이 적다고 꼭 멀어진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배웠다.
어느 저녁,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역 앞 천막들이 덜컹거리고, 사람들은 우산 끝을 모으듯 가게 처마 밑으로 몰려들었다.
문을 닫으려던 참에 한 할머니가 젖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에는 네모난 작은 탁상시계가 쥐어져 있었다.
군청색 플라스틱 케이스에 금이 가 있었고, 투명 덮개 안쪽으로 물이 조금 들어간 상태였다.
“여기… 사장님 계셔요?”
정호는 그날 치료 후유증으로 뒤쪽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서린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은 제가 볼게요. 어떤 증상이세요?”
할머니는 시계를 꼭 끌어안은 채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이 우리 영감 제사인데… 이게 여섯 시에 울려야 되거든. 매년 내가 맞춰놨거든. 근데 오늘 물에 빠뜨렸어.”
“알람만 맞추면 되는 거죠? 다른 시계로도…”
“아니, 이걸로 해야 돼.” 할머니가 말을 끊었다.
“영감이 살아 있을 때 쓰던 거라서. 알람 소리 듣고 일어나서 늘 장에 나갔어.
나도 그 소리 들으면 아직 문 열어놓고 들어올 것 같아서… 미련한 소리지?”
서린은 “아니에요”라고 바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시계를 받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내부는 물기 때문에 녹이 슬기 직전이었다.
간단한 배터리 교체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서린은 뒤에서 잠든 정호를 보았다.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할머니, 제가 해볼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 말은 거의 본능처럼 나왔다.
병원에서 처음 라인을 잡을 때처럼 손이 떨렸지만, 그녀는 정호가 하던 순서를 기억해 냈다.
물기 제거, 접점 세척, 스프링 확인, 배선 상태 점검.
정호는 어느새 깨어 그녀 옆에 와 있었다.
그는 말없이 작은 손전등을 비춰 주었다.
서린은 한참 동안 입술을 깨문 채 작업했고, 마침내 새 배터리를 넣어 알람 시간을 맞췄다.
초침이 움직였다. 그러나 알람이 울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정호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지금 여섯 시 맞춰볼게요.”
서린이 시간을 돌리고 기다리자, 잠시 후 가게 안에 오래된 금속성 알람음이 울렸다.
요란하고 약간 갈라진 소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할머니의 눈빛이 휘청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시계를 받아 가슴에 껴안고, 젖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이 소리야… 맨날 듣던 그 소리… 아이고, 고맙습니다. 내가 내일 새벽에 이거 듣고 일어날 수 있겠네.”
할머니가 떠난 뒤, 서린은 손끝에 남은 금속 냄새를 맡으며 웃지도 울지도 못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호가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잘했네.”
짧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서린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 두 글자를 자꾸 떠올렸다.
잘했네.
어릴 때는 듣고도 시큰둥했던 말인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오래 울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나눈 가장 따뜻한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정호의 몸은 빠르게 야위었다.
기침은 잦아졌고,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찼다.
서린은 결국 결심했다.
“가게를 줄여요. 예약 손님만 받고, 나머지는 정리해요.”
정호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지만, 다음 기침이 끝나고 나서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순순히 말했다.
“그럼 선반 것부터 끝내자.”
“어떤 선반?”
정호는 뒤쪽 작업실 벽면 전체를 가리켰다.
이름표가 붙은 상자들과 시계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어떤 건 주인이 연락처를 바꾸었고, 어떤 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떤 건 수리비가 부담돼 포기한 물건들이었다.
정호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누가 다시 찾으러 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서린은 처음에는 그 말이 집착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기다리는 물건도 있고, 기다림 덕분에 겨우 남는 마음도 있다는 걸.
부녀는 며칠에 걸쳐 상자들을 정리했다.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기록을 새로 쓰고, 연락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맨 아래 구석에서 묵직한 나무 상자 하나가 나왔다.
상자 뚜껑에는 흰색 페인트로 서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뭐예요?”
정호는 잠시 눈을 피했다. 그 표정이 너무 낯설어서 서린은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나중에 열어.”
“지금 궁금한데요.”
“나 없을 때 열어.”
서린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보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끝까지 미루는 버릇.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서린에게는 마지막 순간이 거의 준비 없이 닥쳤다.
그때도 아버지는 “너 힘들까 봐”라는 말로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그녀는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손을 떼었다.
“아버지는 맨날 나중에래요.”
정호는 한참 말이 없더니, 조용히 앉았다.
손등 위 혈관이 전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나도… 말하는 게 늦는 사람이라 그래.”
그날 밤, 서린은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말하는 게 늦는 사람. 너무 쉬운 문장인데, 그래서 더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를 ‘무심한 사람’으로 단정해 두고, 그 안쪽을 보려 하지 않았다는 걸 처음 인정했다.
누군가는 크게 울고 바로 사과하지만, 누군가는 몇 년이 걸려도 한 문장을 꺼내기 어렵다.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랑이 목까지 올라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그렇다.
정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설이 지나고 나서였다.
산소 없이 잠들기 어려워졌고, 병원 입원이 잦아졌다.
서린은 병원과 가게를 오가며 버텼다.
어느 밤, 정호는 입원실 창가를 보며 말했다.
“가게 종, 고쳤냐?”
“아직요. 바빠서 못 했어요.”
정호는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내가 해놓을 걸.”
서린은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종 하나 안 고친다고 큰일 안 나요.”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문 열릴 때 소리 나면… 누가 온 줄 알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서린의 가슴을 찔렀다.
누가 온 줄 안다.
어쩌면 정호에게 그 종은 손님을 알리는 장치가 아니라, 아직 누군가가 찾아온다는 증거였는지도 몰랐다.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계속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증거.
정호는 초봄이 시작되기 전 새벽,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은 극적이지 않았다.
소설처럼 긴 유언도 없었고, 영화처럼 눈부신 햇빛도 없었다.
간호사가 모니터를 확인하고, 서린이 아버지 손등을 만졌을 때, 손은 이미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못했다.
몸이 먼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움직였다.
서류를 작성하고, 전화할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장례 절차를 정리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강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례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밤, 빈 가게 앞에 혼자 섰을 때, 서린은 처음으로 자신이 단단한 게 아니라 비어 있다는 걸 알았다.
가게 유리문을 열자, 고장 난 종이 아주 작은 떨림을 냈다.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게 안은 정호가 며칠 전까지 앉아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돋보기, 드라이버, 부품함, 약봉지, 메모지. 서린은 불을 켜지 않은 채 한동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벽 아래 놓인 나무 상자가 떠올랐다.
서린이라고 적힌 그 상자.
그녀는 상자를 작업대 위에 올리고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녹음 알람시계와 손목시계, 그리고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노트 첫 장에는 정호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반듯했지만 힘이 조금 빠진 글씨였다.
“서린아, 이건 네가 너무 늦게 받을까 봐 미리 만든다. 나는 말이 늦어서, 시계에 대신 맡긴다.”
서린의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상자 안 시계들은 각각 시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06:10, 12:40, 18:30, 23:00… 그녀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하루의 시간들이었다.
노트에는 각 시간에 대한 짧은 설명이 적혀 있었다.
“06:10 네가 초등학교 다닐 때 깨우던 시간.”
“12:40 네가 급식 싫다고 도시락 남겨오던 때 생각남.”
“18:30 야간자율 끝나고 버스정류장 데리러 가던 시간.”
“23:00 네가 첫 야간근무 끝내고 집에 오던 시간.”
서린은 떨리는 손으로 가장 위에 있는 시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녹음 버튼 옆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06:10. 그녀는 배터리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잠시 잡음이 흐른 뒤, 아주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살아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또렷하고, 어색하게 다정한 목소리.
“서린아, 일어나. 지각한다. 너 어릴 때 맨날 이불속에서 ‘5분만’ 했지. 그때는 내가 성질내면 네 엄마가 웃으면서 나가 있으라 했다. 사실 나는 네가 자는 얼굴 보는 게 좋았어. 그래서 더 깨우기 싫었다.”
서린은 숨을 들이마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재생이 끝나자 시계 안 작은 모터 소리만 남았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시계를 눌렀다.
“12시 40분. 점심 챙겨 먹어라. 병원 일 바빠도 밥 거르지 마. 너 중학생 때 도시락 반찬 바꿔달라고 투덜댔을 때, 내가 속으로는 기뻤다. 입맛 있다는 게 건강하다는 거라서.”
다음 시계, 다음 시계. 정호는 시계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남겨 두었다.
서린이 처음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 무릎 까졌던 날.
수능 날 새벽 버스정류장에서 손이 얼도록 기다리던 시간.
간호대 합격 문자 받고 울던 모습.
어머니 장례식 날, 서린이 검은 옷 주머니에서 구겨진 휴지를 꺼내도 끝내 울지 않았던 장면까지.
그리고 23:00에 붙은 마지막 녹음에서, 정호는 오래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 시간은 네가 밤근무 마치고 집에 오던 시간이다.
문 여는 소리 들으면 안 자는 척 누워 있었다.
들어와서 냉장고 여닫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들으면… 아, 오늘도 무사히 왔구나 싶었다.
나는 말이 느려서, 네가 힘들 때 빨리 안아주지 못했다.
네 엄마 보내고 나서 더 그랬다.
미안하다. 근데 서린아, 나는 네가 자랑스러웠다. 네가 사람들 곁에서 밤을 버텨주는 사람이라서. 혹시 내가 없어서 네가 더 조용해지면, 가게 문 종부터 고쳐라. 누가 오는 소리 들으면 사람 마음이 덜 꺼진다.”
재생이 끝났을 때, 서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작업대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소리를 죽이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몸이 먼저 흔들렸다.
그녀가 지금껏 참아 둔 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듣지 못했던 말들, 오해했던 시간들, 화내고 돌아선 저녁들, 전화벨을 일부러 못 본 척한 밤들.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아버지, 왜 이제…”라는 말이 몇 번이고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곧 알았다.
아버지는 정말로 늦은 사람이었을 뿐이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방식으로 오래 준비해 두고 있었다. 말이 아니라 시간의 모양으로.
다음 날 아침, 서린은 평소보다 일찍 가게에 나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열며 그녀는 고장 난 종을 떼어냈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사를 풀었다.
녹이 슨 스프링, 닳아버린 작은 타격 핀, 먼지. 정호가 수없이 보여 줬던 순서대로 하나씩 정리했다.
예상보다 더 어려웠지만, 이상하게 손은 차분했다.
점심 무렵, 마지막 나사를 조이고 문 위에 다시 종을 달았다.
그리고 유리문을 열어 보았다.
맑고 작은 종소리가 가게 안에 울렸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바깥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전철 지나가는 진동, 멀리서 들리는 상인들의 호객 소리 사이를 뚫고 들어와 잠깐 가게를 채웠다.
서린은 가만히 서서 그 소리를 두 번, 세 번 들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마치 누군가 진짜로 찾아오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지도 몰랐다.
떠난 사람은 몸으로는 돌아오지 못해도, 어떤 습관과 소리와 시간으로 계속 문을 열고 들어온다.
며칠 뒤, 한명자 아주머니가 다시 가게에 왔다.
이번에는 반찬통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장님 안 계신다고 들었어요…”
서린은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니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반찬통을 내밀었다.
“장조림 좀 했어요. 사장님이 우리 아들 목소리 살려줬잖아. 그날 이후로 내가 아침마다 버튼 한 번 누르고 밥 먹어요. 덜 외롭더라고.”
서린은 반찬통을 받다가 울컥했지만, 이번엔 입꼬리를 먼저 올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거예요.”
아주머니는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문 위 종을 보고 말했다. “종소리 좋네.”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잘 들려요.”
그날 저녁, 서린은 가게 유리문에 붙은 오래된 스티커를 떼어내고 새 글씨를 붙였다.
정호시계병원 아래에, 아버지가 남긴 문장을 조금 다듬어 적었다.
시간과 기억을 고칩니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더 넣었다.
말이 늦은 사람들의 마음도 맡겨주세요.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젊은 엄마였다.
아이는 캐릭터 손목시계를 내밀며 “초침이 안 가요”라고 말했다.
서린은 아이에게 의자 하나를 내주고, 시계를 받아 돋보기를 썼다.
작업대 한쪽에는 아버지가 남긴 녹음 시계 상자가 아직 놓여 있었다.
바깥에서는 가랑비가 내렸고, 문이 열릴 때마다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서린은 문득 어젯밤 맞춰 둔 알람 시간을 떠올렸다.
새벽 6시 10분. 그녀의 휴대폰이 아니라, 아버지가 남긴 작은 시계가 울리게 해 두었다.
다음 날 새벽, 알람이 울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어둠을 아주 천천히 밀어냈다.
“서린아, 오늘도 네가 사는 쪽으로 햇빛이 먼저 간다. 밥 먹고 나가라.”
그 한마디에 서린은 이불속에서 눈을 감은 채 한참 웃다가 울었다.
눈물은 어젯밤보다 조용했고, 대신 마음은 조금 덜 무거웠다.
슬픔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다만 슬픔의 모양이 바뀌고 있었다.
사람을 무너뜨리기만 하던 기억이, 이제는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소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날 아침 서린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 섰다.
시계를 챙기고, 열쇠를 들고, 잠깐 숨을 골랐다.
유리문을 여는 순간, 고쳐진 종이 맑게 울렸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주 작게 말했다.
“다녀올게요, 아버지.”
대답은 없었지만, 종은 한 번 더 흔들리며 천천히 울렸다.
마치 오래 기다린 사람이 이제야 제때 말을 건네는 것처럼.
그리고 그 소리는, 작고 분명하게, 사라지지 않고 가게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